2009년 10월 08일
간략하게 쓰는 베트남전(2)
'전투에서 우린 한번도 진적이 없었다'-웨스트멀랜드, 베트남 지원군 총 사령관
웨스트멀랜드의 말처럼 미국은 베트남전 초기부터 항상 우세했다. 애초에 2차대전의 유산인 모신나강, 끽해야 AK47에 중화기라고 해봐야 RPG와 박격포정도로 무장한 게릴라들이 폭격기에서 야포까지 다종다양한 무기의 화력지원을 받고 헬기로 기동하던 미군을 상대로 승리를 한다는게 어불성설.
그럼 대체 뭐가 문제라서 미국은 베트남에서 조뙤고 말았는가?
1.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굳이 내놓지 않더라도 전쟁과 정치는 땔래야 땔수없는 관계다. 그러나 베트남전에서 미군은 '정치'의 간섭을 너무 많이 받았다. 단적으로 북베트남의 생명줄이라 할 수 있던 호치민 루트이야기를 해보자.
이 호치민 루트라는게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거쳐 북베트남 그리고 남베트남가지 이르는 3,000km가 넘는 길이었는데 바로 이길로 북베트남은 베트콩들에게 무기와 탄약, 병력을 지원했다. 이거만 봐도 딱 감이 올거다. 여기만 틀어쥐면 베트콩의 멱줄을 잡아 쥐는 길 이라는거. 그러나 아쉽게도 미국은 이 호치민 루트를 치지 못했다. 뭐 B52로 폭격도 하고 특수부대도 투입하고 했다만... 각종 물자가 건너오는 길인 라오스 지역을 제대로 치진 못했다.
웨스트멀랜드가 '라오스쪽만 치면 우리가 이겨!' 라고 외쳤지만 공염불, 왜? 존슨 대통령이 허락을 안해줬거등요. 그럼 왜 허락을 안해줬냐, 바로 소련,중국과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중립국으로 남겨놓겠다고 협약을 해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미국이 암만 전쟁을 좋아라 하고 쌈박질도 잘한다지만 2차대전,한국전쟁에 이어 3차대전을 할 여력까진 안됐거든.(이때는 소련도 본격적으로 핵무장을 한지라 핵으로 위협했다간 지구멸망의 지름길이었다. 아 옛날이어...)
2.
"우리는 그 마을을 구해내기 위해 그 마을을 파괴했다"
베트남전 이전에 미국은 제대로 된 게릴라전이라는 걸 경험해 본적이 없었다. 뭐 태평양 전쟁 당시 정글에서 일본군과 맞장뜬적은 있지만 그래도 그때는 '전선'이라는 개념이 존재했다. 한국전쟁때도 매한가지고. 그런데 이 베트남이란 동네는 딱히 전선이랄 곳이 없었다. 남베트남 사람들도 이사람들이 베트콩인지 아니면 진짜 민간인인지 알수도 없고... 그야말로 사방이 적이라고 봐도 무방한 곳이 바로 베트남이었는데 결국 여기서 미국은 말많고 탈많으 FFZ, Free Fire Zone이라는걸 설정하기에 이른다.(당시 남베트남 정부 인사들 마저 '우린 단지 몇몇 도시만을 지배하고 있을 뿐이었다' 같은 소릴 할 정도였으니...)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도에 FFZ로 지정된 곳은 '그냥 총 쏴도 되는 곳'이 되었다. 당연히 FFZ로 지정된 지역안에 있는 마을은 초토화 되었고 주민들은 생활터전을 잃어버려야 했다. 모택동의 '물과 물고기' 이론처럼 게릴라를 잡아내려면 지역민의 호응을 얻어내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일텐데 미국은 이 FFZ로 스스로를 '더러운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오죽하면 여기에 학을 때고 중국까지 도망간 미군애들이 있었을 정도니까 말 다했지 뭐
그렇다고 이게 효과가 있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다들 알겠지만 나이더스 커널 마냥 땅굴을 파고 다닌게 베트콩이었으니까.

바로 이 땅굴의 존재가 미군을 미치게 했던 거다. 방금 지나간 자리에서 갑자기 총알이 날아오고 구불구불한 땅굴에 수류탄을 까넣어 봐도 효과도 없고 들어가자니 이건 뭐 독사에 죽창에 부비트랩 천지라 지옥행 특급열차가 따로 없는 상황. 뭐 사이공 인근의 구찌 터널의 경우 총연장 320km에 1개 보병사단이 안에 들어가고도 남을 규모의 땅굴이었다니 이런 곳에서 '정상적인 전쟁'을 한다는건 불가능한 소리였던 셈이다.
3.
"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겁니까?"-(故)월터 크롱카이트:CBS앵커
영어사전에 Fragging이란 단어를 함 찾아보시라. 꽤나 쇼킹한 단어인데 수류탄을 까서 상관을 요단강으로 보내는 짓을 가리키는 속어다.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일텐데 베트남에선 이 프레깅이 성행했다. 심지어 사병들 사이에 나돌던 지하신문에선 특정 장교에게 '현상금'을 내거는 일까지 있었을 정도라니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군기문란이 어느정도였는지 예상이 될거다.
이런 프레깅 말고도 미군에게는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베트남 주변국이라 하면... 라오스,미얀마,태국 등등... 인데 뭔가 감이 오지 않나? 그렇다. 바로 마약되겠다. 베트남이란 나라 자체가 전쟁에 시달리다 보니 마약류 같은걸 단속할래야 단속할 여력이 없었던 나라인데다 주변국도 마약으로 유명한 나라. 그럼 뭐 답은 뻔하지.
익숙치 않은 정글과 사방에 적이 깔린 환경은 결국 병사들이 마약에 손을 대게 만들었고 나중에는 전투중 부상으로 입원한 환자보다 마약 복용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더 많은 지경에 이르게 된다. 게다가 장교살해 및 마약문제 뿐만 아니라 성병문제까지 만연해 있던게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현실이었다.
4.
"우린 전쟁에선 한번도 지지 않았다"-보 구엔 지압:북베트남 사령관
1968년 1월 31일 일어난 구정 공세, 베트콩 3만 7,000명을 사살하고 미군은 2,500명이 전사했으니 단순히 머릿수로만 봐도 미국이 이긴 셈이고 베트콩이 점련한 지역을 모두 수복했으니 베트콩의 패배라 봐도 무방할 전투인데 문제는 이 테트 공세에서 충격적이기 그지 없는 장면이 방송을 타고 미국인의 안방으로 날아들었다는 거다. 뭐 딴건 아니고... 사이공의 미 대사관이 공격당해 불타는 장면이었는데 하여간 이 장면이 방송을 타면서 미국의 반전여론은 제대로 끓어올랐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 오고 있었다. 그렇다. 괜히 베트콩이 1968년 구정에 대공세를 펼친게 아니었다.(원래는 베트콩의 공세에 북베트남군이 호응해 대대적으로 밀고내려 오는거였는데 북베트남의 호응이 없었다)
5.
낯선 환경, 그리고 명분마저 없는 전쟁이었던 데다가 지나치리 만치 정치적인 전쟁이었다. 북베트남과 베트콩은 자신들이 가진 자원을 제대로 활용했고 어떤 식으로 싸웠을때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미국은 스스로의 손발을 묶고 전쟁에 임해버렸다. 애초부터 제대로 된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에 임했다면 전쟁양상은 달라졌을 터이나 그러지 못했고 결국 제대로 된 싸움도 해보지 못하고 베트남에서 물러나야 했다.
아 근데 철수할때 미국은 호치민한테 말라리아 약주고 OSS에서 근무시켰던걸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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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10/08 20:25 | 군사관련이바구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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