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이야기-소총발달사(2)

1.
기술의 발달로 아퀴버스와 머스킷 사이의 간격, 즉 크기와 무게로 인한 총의 구분이 모호해 지며 총은 머스킷 방식으로 통일되었는데 여기서 총기 역사에 있어 또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등장하니 바로 '강선'이 파인 총, 즉 라이플의 등장이다. 뭐? 강선이 뭔지 모른다고? 흠... 아직 미필인가?(...) 그러니까 강선이란 총열안에 파인 나선형의 홈을 말하는데 이게 왜있냐 하면 '명중률' 때문이다.

자 총알이 나가면서 이 강선에 의해 회전을 받게 된다. 그럼 왜 회전을 거냐? 회전이 걸리지 않은 물체는 바람과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해 그 궤도가 바뀌게 마련이다. 비유를 하자면 무회전 프리킥과 회전을 먹인 프리킥의 차이라 할 수 있겠다.

하여간 이 강선이 등장해 총의 명중률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으나 뭐든 그렇듯 초창기 강선을 이용한 사격은 애로사항이 많았다. 당시 소총이란것이 전장식인데 이때문에 총열 구경은 총알 직경보다 약간 더 크다. 그럼 총알이 총열에 밀착이 안되겠지? 그러니 그냥 쏘면 총알이 회전을 못받는 일이 생기는데 이것때문에 총알에 얇은 가죽을 씌워 총구에 밀어넣어야 했다. 그럼 그냥 머스킷보다 재장전시간이 더 걸리겠지? 일반적으로 숙련된 머스킷 사수가 1분에 네발 가량을 쏠 수 있는 반면 라이플은 1분에 두발이 고작이었다.

이런 이유로 라이플은 정확도에 비해 연사력이 떨어져 주력소총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특수임무를 부여받은 부대들이 주로 사용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라이플 연대'였다. 머스킷 사수들이 때거지로 모여다니는 것과 달리 이들은 조별단위로 흩어져 라이플의 높은 명중률을 이용 상대의 장교를 사살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였다.(영국이 이런 라이플 연대를 만든 이유는 식민지 미국에서 겪은 독립전쟁의 영향이었는데 당시 독립군은 소수병력을 이용해 치고빠지는 전술을 사용하였고 이때문에 영국은 이에 대응할 라이플 연대를 만들어 운용하였다)     

 
2.
음... 드라이제 소총이야기를 할것처럼 1부를 끝내놓고 보니 '강선'을 빼먹은걸 눈치채고 부랴부랴 라이플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 드라이제 소총으로 넘어가자(...)

드라이제 소총의 개발자 요한 니콜라우스 폰 드라이제
-사진출처:국방시민연대(www.dcn.or.kr)-

드라이제 후장식 소총은 기존의 전장식, 즉 총구에 총알과 화약을 넣어 장전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총알과 총알을 추진시키는 화약, 즉 장약이 탄피로 포장되어 일체화된 '탄약'을 사용한다는 점과 공이를 이용해 총탄을 격발한다는 점에서 현대 소총의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한 총으로 봐야 할것이다.(차이가 있다면 현용소총은 뇌관-장약-탄환으로 탄약이 구성된 반면 드라이제 소총의 경우에는 화약-뇌관-탄환으로 탄약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과 탄피가 '종이'로 되있다는거)

초창기 드라이제 소총은 전장식이었지만 연구를 거듭 볼트액션 장치를 만들어 냄으로써 후장식 소총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1841년 프로이센군의 주력소총으로 채택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벌어진 쾨니히그레츠 전투에서 드라이제 소총은 화려하게 데뷔를 하기에 이른다.

전장식 소총으로 무장한 오스트리아군과 달리 프러시아군은 엎드려 은,엄폐한 자세에서 지속적으로 사격을 가할 수 있었고 거기에 재장전 속도는 비교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무려1분에 여덟발(!!!)을 쏠 수 있었는데 이러니 쏘고 난 다음 재장전 시간의 갭을 이용해 총검돌격하는 전통적인 전술로 임했던 오스트리아군은 스스로 죽으려고 뛰어든 셈이 되었다. 결과는 안봐도 뻔히 예측할 수 있듯 오스트리아군의 일방적으로 죽음으로 마무리되었다.

벗뜨 초창기 후장식 소총은 몇가지 단점이 존재했는데 그을음이 무지하게 많은 흑색화약의 특성상 총을 쏘다보면 약실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약실에서 가스가 새어나와 사수에게 부상을 입히는 일이 자주 발생했고(어머 뜨거라...) 화약을 뜷고 들어가 뇌관을 때리다 보니 공이가 부러지는 일 또한 심심찮게 일어났던 것이다.(총의 구조가 대폭 간단화된 지금도 총쏘다 공이가 부러지면 난감할텐데 그때는 어땠을까?) 


3.
하여간 드라이제 소총은 전 유럽을 휩쓸게 되었고 19세기 후반 보불전쟁의 경우 프로이센과 프랑스 둘 다 후장식 소총에 탄약을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종이를 탄피로 활용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었고, 이로인해 개량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현대적인 총기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마우저1871이 등장하게 되었다.

보불전쟁 이후 파울 마우저와 형 빌헬름 마우저의 발명으로 등장한 마우저1871은 당시 최신기술이라 할 수 있는 금속제 탄피를 도입한 총기였고 드라이제 소총의 문제점들을 수정한 가히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그리고 1884년 프랑스가 무연화약을 실용화 하는데 성공하고 연이어 영국과 미국등 여타 국가들도 이 무연화약을 빠르게 도입하여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쫌 쎄다 싶은 나라들은 죄다 이 무연화약을 사용하게 된다.

그렇다, 무연화약 바로 이 무연화약의 등장으로 총은 또한번 역사적인 기점을 맞이하게 된다.


4.
자 총알이 빵야 하고 나가는 총이라는게 대단히 위력적인 무기라는 것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등장한다. '그럼 총이 빵야빵야빵야 하고 연속으로 나가게 할 수 없나?' 그래서 등장한것이 리볼버 방식이었다. 그러나 리볼버는 권총에나 쓸까 소총에는 써먹을 만한 방식이 못되었다. 소총에 쓰자니 실린더의 크기와 무게도 장난아닌 데다가 총을 쏘며 발생하는 가스를 처리하기도 곤란했다. 리볼버 방식외에 총열을 여러개 묶은 소총도 등장했는데 이것 역시 탈락, 너무 무거운데다가 재장전에도 시간이 장난 아니거등요.(결정적으로 둘 다 가격이 매우 비쌌다) 

그리고 무엇보다 발목을 잡은건 탄환의 발사에 없어서는 안될 흑색화약이었다. 흑색화약은 잔여물이 굉장히 많이 나왔는데 이때문에 총기손질을 제대로 안할 경우 화약 잔여물의 덩어리들이 총열에 박혀있다보니 장전에 애로사항이 꽃피었음이다. 극도로 발달된 무연화약을 쓰는 지금도 총기손질 제대로 안하면 기능고장나기 십상인데 그때는 말할것도 없었을 것이다.(아아... 총기수입의 추억이여...)

하여간 이 화약잔여물이 일차적인 걸림돌이었는데 무연화약이 등장해 화약 잔여물이 획기적으로 줄어들면서 연달아 총을 쏴도 별 무리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다량의 탄약을 미리 소총에 넣어 놓을 수 있는 클립이 등장했다. 이리하여 수동으로 빵야 빵야 빵야 하면서 연발이 가능해 졌다.(참고로 이 무연화약의 발전에 큰영향을 끼친 사람이 있으니 그 유명한 노벨이다)

이를 통해 20세기 초반 소총을 제조하고 보유할 만한 기술과 국력을 가진 나라들은 수동 장전식 연발 소총을 보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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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아타호네 | 2009/10/22 21:12 | 군사관련이바구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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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케르나르 at 2009/10/22 23:13
저격용 라이플에 관련한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내용과 조금 겹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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