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스펙터 영상물(영화,TV)

다니엘 크레이그가 나온 007 시리즈에서 캐릭터의 일관성이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카지노 로열까지만 해도 이제 막 살인면허를 부여받은 초짜였고 퀀텀 오브 솔러스는 카지노 로열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리고 스카이폴은 그 이후에 최소 10년은 됨직한 시간을 순식간에 뛰어 넘어 은퇴를 바라보는 요원을 그려낸 영화였다. 

이러다 보니 007이란 캐릭터의 일관성은 희미한 시리즈였지만 어쨌든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옛날의 007이 선보였던 썰렁한 유머와 최첨단 무기와 기기묘묘한 장비들의 비중을 줄이는 대신 몸과 몸이 부딫히는 액션을 늘리고 개별 캐릭터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려내는데 집중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스펙터 역시 이런 부분을 잊지 말고 갔어야 했을텐데 외려 스펙터는 과거 007 시리즈로의 회귀를 택해버렸고 그 결과는 참 애매한 것이 되버렸다. 

그냥저냥 볼만한 액션영화이긴 한데 뭔가 웰메이드의 때깔을 보였던 스카이폴을 생각하면 아쉽다고 밖에 할말이 없다. 뭐 옛날 007 스타일이 나쁘다는건 아니지만 그런 분위기의 시리즈는 로저무어, 피어스 브로스넌 두 사람이 주연을 맡은 시리즈에서 질리도록 봐왔으니 말이다. 

뭐 여러가지 말할 구석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힘이 빠지는 부분은 악역이었다. 카지노 로열의 르 쉬프르는 어쨌든 나름의 권모술수로 본드를 위기에 빠뜨렸고(덤으로 무지막지한 고문까지!) 거기에 메즈 미켈슨이란 배우와 다니엘 크레이그가 한쪽은 인텔리한 느낌, 한쪽은 흡사 불도저 같은 느낌으로 서로 대비되는 이미지라 악역으로써 상당한 무게감을 내뿜었고 스카이폴의 라울 실바야 뭐 말할것도 없었는데 스펙터에서 크리스토프 발츠가 맡은 블로펠드는 아무리 봐도 그냥그런 악당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라울 실바가 쟤 부하였다고? 말이 돼? 뭐 이런 느낌. 뭐 라울 실바가 사실은 스케일이 클 뿐 관심종자(...)이긴 했다만 어쨌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본드와 대립각을 세우는데 있어서 쎄보인다 하는 느낌을 팍팍 풍긴반면 블로펠드는 초반부에 뭔가 오오오... 싶다가 그냥 고전적인 스파이 영화의 악당으로 전락해버리는 모양새인데다가 신체도 본드가 한대 치면 그대로 죽을거 같은 체구라 배후 조종자라는 느낌이 영 덜하기도 하고 말이지. 

카지노 로열과 퀀텀 오브 솔러스, 스카이폴에 비해 훨씬더 클래시컬한 007인데 1990년대도 아니고 2015년에 과거의 그것을 그대로 답습할 이유는 없지 않나 싶다. 이미 그런 007로는 도저히 답이 없다 생각해서 기존의 말쑥한 007이 아닌 다니엘 크레이그를 주연으로 삼았던거 아니었나?